2021년 6월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작업 중 발생한 건물 붕괴사고는 불법 하도급과 무리한 해체방식 등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로 밝혀졌다.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은 건물 해체 작업을 한솔기업에 하도급 주었고, 한솔기업은 백솔기업에 재하도급하면서 단위면적당(3.3㎡) 공사비는 28만 원에서 4만 원까지 떨어졌다. 누군가 평당 24만 원을 중간착취하는 사이 죽어야 할 이유가 없는 시민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참사 다음 날 HDC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은 “재발 방지를 위해 전사적 대책을 수립해 나가고 이번 사고로 고통을 겪는 모든 분과 국민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를 드린다고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불과 7개월이 지난 1월 11일,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는 광주 서구 화정동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또다시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지상 39층 규모의 초고층 아파트가 무너지는 장면은 그 자체로 엄청난 공포이지만, 어떻게 같은 회사가 같은 지역에서 유사한 참사를 반복하는 것인지 많은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 재계 입장 변호한 보수언론
반복되는 사회적 재난을 예방하고 시민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보수언론은 경영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다거나 안전비용 증가로 경영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재계 입장을 대변했다. 반면 진보언론은 사망재해 81%가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현실에 기초해 법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는 1면 머리기사 ‘“중대법 1호 피하자” 공장이 멈췄다’ (1월 27일 양연호·정지성·연규욱 기자)를 통해 “이대로 중대재해법이 시행된다면 중소기업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지 말라는 소리와 같다”는 익명의 창원지역 금속제조공장 대표 인터뷰를 실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자체를 반대하는 보수언론은 ‘CEO에 대한 처벌=기업활동 위축’이라는 공통된 논조를 펴고 있으나, 어떻게 중대재해를 예방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제시는 못하고 있다. 광주 서구 아파트 붕괴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무리한 공기단축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급기야 일부는 시행이 유예된 5인 미만 사업장과 노동자, 자영업자와 시민의 갈등을 조장하는 ‘을들의 전쟁’ 프레임에 나서고 있다.
매일경제는 ‘동네 분식점도 중대재해법 공포…‘안전담당 이모’ 둬야 할 판’ (1월 30일 김희래 기자)을 통해 중대산업재해와는 달리 중대시민재해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 범위가 불명확하다며 “법조계에 따르면 부부가 운영하는 동네 분식점이라고 하더라도 식중독 등 원료 제조물 결함으로 인해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할 경우 중대재해법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창원지역 중소기업 대표와 마찬가지로 익명의 법조계 인터뷰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 기사는 지난해 8월 경기도 성남 분식점에서 발생한 식중독 사고로 300여 명의 환자와 1명의 사망자가 나온 사례를 중대재해처벌법에 적용하면 분식집 사장은 행정처분에 더해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런 주장이 올바른 법 해석인지는 따로 논한다고 하더라도 식중독 사고로 다수 시민이 질병을 얻고 사망까지 이르렀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없을지언정 누군가는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식중독 등 불량식품 유통은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과 함께 박근혜 정부에서 이른바 4대악으로 규정하고 강력처벌을 약속한 주요 생활범죄 중 하나다.
돈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인식전환 이끌어야
한편 매일노동뉴스 ’39층 타설팀은 왜 모두 외국인이었을까’ (1월 25일 강예슬 기자)는 광주 서구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의 원인을 건설현장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분석했다. 건설현장에는 불법 하도급과 중간착취로 인해 위험하고 힘든 일은 외국인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다는 정영섭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집행위원 인터뷰를 전하면서 “지금은 사실 이주노동자 없이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현실을 진단했다.
보수언론의 주장처럼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면 최소한 건설현장의 불법 다단계 하청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야 한다. 광주 동구 재개발지역 해체작업 참사와 서구 아파트 신축 공사장 붕괴사고의 공통점은 “이익은 사유화”하고 책임은 하청노동자와 시민들에게 전가하는 “피해의 사회화”에 있다.
동네 분식점에서 식중독 사고가 발생했고 원인이 동네 분식점 사장님의 고의가 아니라 원자재를 공급하는 원청에 있다면, 그 책임을 원청에 물어야 한다는 게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다. 언론이라면 돈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사회적 인식 전환을 선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민과 자영업자는 자본의 탐욕 때문에 무고한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어선 안 되는 연대의 대상이다.
이 글은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 ‘시시비비’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칼럼의 필자는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