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3일, 평택항 컨테이너 번들 작업을 진행하다 사망한 고(故) 이선호 씨 사고의 책임자들에 대해 모두 벌금과 집행유예가 선고되었습니다. 지난 2월 10일에는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 사고의 책임자들에게도 집행유예와 벌금형만을 내렸습니다. 심지어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에게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2022. 1. 13. 선고 2021고단1265 판결
형사1단독 정현석 판사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산업 효율과 이윤을 앞세우는 사회에서 죽음은 외주화되고, 처벌은 최소화되었습니다. 고(故) 이선호 씨 사망사건 책임자들에 대한 1심 판결문을 바탕으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 서희원 변호사가 그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2021년 4월, 평택항에서 한 청년이 컨테이너 정리 작업을 하던 중 약 400kg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안전모 등 필수적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한 채 난생 처음 해보는 컨테이너 바닥 이물질 제거작업에 투입된 바로 그 날, 고 이선호 씨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선호 씨의 사망사고에 책임있는 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은 해를 넘겨 진행되었고, 지난 1월 13일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법원은 관련자들의 안전조치의무 위반의 점은 모두 인정하면서도, 피고인 전원에 대하여 집행유예의 형을 선고하였다. 원청인 주식회사 동방에 대하여는 벌금 2천만 원이 선고되었다.
대체 무엇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인지, 23살 청년노동자의 황망한 죽음을 초래한 이들의 죄책은 과연 적정하게 평가된 것인지, 1심 판결문을 가까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위험의 외주화
피해자는 원청인 주식회사 동방과 인력공급계약을 체결한 하청업체 주식회사 우리인력의 소개를 받고 주식회사 동방 평택지사에 공급된 일용근로자로, 주식회사 동방의 업무상 지휘·감독을 받으며 동식물 검역, 창고 정리 작업을 수행하였다. 사고 발생 전까지 피해자는 단 한 번도 컨테이너 번들작업을 수행해본 경험이 없었다.
한편 이 사건 사업장에 설치된 컨테이너는 한쪽 벽체의 무게가 약 400kg에 달하는 중량물이었고, 컨테이너 벽체가 바닥에 쓰러지지 못하도록 하는 완충장치가 제거된 상태였으므로 벽체를 밀거나 진동 등 충격이 가해지는 경우 벽체가 빠른 속도로 바닥으로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큰 상황이었다. 이처럼 위험한 업무에 피해자와 같이 필수적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하고, 안전교육조차 받지 못한, 숙련되지 않은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가 갑작스레 투입된 것이다.
1심 법원은 원청 소속 근로자인 피고인 김 아무개가 다른 업무로 바쁜 관계로, 컨테이너 번들작업 경험이 전무한 하청업체 소속 피고인 전 아무개에게 작업 지휘를 맡긴 사실을 인정하였다. 우리 사회가 숱한 노동자의 희생을 겪고도 죽음과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지 못하는 사이, 또 한 번의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예정된 인재
피해자가 사고 발생 당일 수행한 컨테이너 번들작업은 작업자에게 사상이 발생될 우려가 큰, 극히 위험한 업무였다. 이런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안전조치 등을 취하고, 근로자에게 안전장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사전에 위험을 조사하고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여야 하며, 작업지휘자를 지정하여 작업계획서에 따라 작업을 지휘하여야 한다. 근로자에게 발생될 위험 방지를 위해 유도자 역시 배치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 사업주는 컨테이너 번들작업을 진행하기 전 업무의 위험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구체적인 안전조치를 취하도록 하지도 않았고, 필수적 안전장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안전교육조차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숙련되지 않은 근로자들로 하여금 작업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사고 발생 직후 실시된 정기감독에서도 그 밖의 수많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되었다.
이처럼 고위험 작업이 빈번히 이루어지는 이 사건 사업장의 안전관리 실태는 말 그대로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피고인들은 마치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행된 것처럼 허위로 기재한 작업계획서를, 그마저도 작업이 모두 종료된 이후에 작성, 보고, 결재하기도 했다. 피해자를 비롯한 현장 투입 근로자들에게 작업을 지시해야 할 하청업체 소속 작업지휘자는, 컨테이너 번들작업을 직접 수행해본 경험이 없음에도 작업 순서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작업지시를 하였다. 이 사건 사고는 그야말로 ‘예정된 인재(人災)’였다.
‘솜방망이’ 처벌에 최선을 다한 법원
1심 법원은 이 사건 피고인들의 혐의에 관하여 모두 유죄를 인정하고도, 피고인들 전부에 대하여 집행유예의 형을 선고하였다. 원청인 주식회사 동방에 대하여는 벌금 2천만 원 형이 선고되었다. 유사 산재 사망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례를 볼 때, 법원이 실제 발생한 사고의 중대함에 비해 가벼운 형을 선고한 것은 특별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참고로 지난 1월 4일, 경향신문이 지난해 대법원 열람시스템에 게시된 사망자 발생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 178건에 대해 전수조사한 결과 보도에 따르면, 2020년 한 해동안 법원은 산안법 위반·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벌금형 또는 평균 7.3개월의 징역·금고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개는 ‘징역 4개월·집행유예 1년’이나 ‘6개월·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러나 법원이 선고형의 결정 이유로 제시한 점들을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산재사망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선고형을 결정할 때 법원은 유독 꼼꼼하게 감경사유를 찾아내 주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법원은 특히 사고가 발생한 컨테이너 모델의 자체적 결함에 대해서까지 꼼꼼히 짚어주며, 이러한 점이 피고인들의 결과 발생의 예견가능성 및 회피가능성에 있어서 어느 정도 참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사업주의 책임을 경감시키는 사유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컨테이너 번들작업을 수행하여 온 원청으로서는 해당 업무가 고위험 작업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에 정해진 대로 컨테이너 번들작업을 진행하기 전 업무의 위험성을 면밀히 평가하였더라면, 이 사건 컨테이너와 같은 노후화된 모델의 경우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더 높다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양벌규정(산업안전보건법 제173조 제1호, 제167조 제1항)에 따라 원청에 과한 벌금형이 2천만 원에 불과하다는 점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현행 법률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여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행위자의 법인에게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과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위 경향신문 분석에 따르면 2020년 한 해동안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로 인해 법인에게 부과된 벌금형의 평균은 약 553만 원이다).
연간 5천억 원 매출을 올리는 원청 회사가 벌금 2천만원으로 안전에 대한 투자 필요성을 느끼게 될까? 검찰 구형보다는 무거운 형을 선고하였다고는 하나, 과연 실효성 있는 제재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비용’
반복되는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산재 사망사고를 유발하는 것을 중죄로 규정하고, 사업 전체를 총괄하는 경영책임자가 경각심을 가지고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비용’이 기업 경영에 실질적인 타격이 될 정도로 획기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올해 우리 사회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즉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원년(元年)을 맞는다. 벌써부터 재계는 사고 발생 시 경영진의 처벌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분주한 듯하다.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의 보완을 통해 중대재해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들여야 할 노력을, 어떻게든 형사재판에서 최대한 형량을 낮출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는 데 쓰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 형법의 한계를 넘어, 중대재해 발생 방지에 실효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그 취지대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향후 이를 적용할 법원의 판결들에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