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한 지도자가 그립다,,,,,

 

옛날 자아도취에 빠진 왕이 있었다. 왕이 아침에 눈을 뜨면 화려한 왕관과 옷으로 치장하고 거울 앞에 서곤 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자아도취(自我陶醉)의 만족을 느꼈다. 과도한 세금과 흉년으로 고통을 당하는 백성들의 사정은 전혀 몰랐다.

하루는 지혜로운 신하가 거울을 떼어내고 그 곳에 창문을 달았다. 잠에서 깨어난 왕이 화려한 옷과 왕관을 치장하고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거울이 아닌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화려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굶주림에 허덕이는 초라한 백성들의 모습 이었다. 왕은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껏 백성들의 아픔을 모르고 있었구나” 왕은 그때부터 화려한 옷을 벗어 던지고 소박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백성들을 잘 다스렸다. 지도자는 예민한 귀와 밝은 눈을 지녀야 한다.

지도자의 자리는 섬기는 자리다. 자기 주관이 뚜렷해서 확신을 가지고 일을 처리해 나가면 고집쟁이 독불장군이라고 비난하고,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결정을 신중하게 하면 우유부단 하다거나 줏대가 없다고 비난한다. 말이 없고 과묵하면 높은 자리에 올라 가더니 목이 뻣뻣해 졌다고 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면 나약해 빠져서 뭘 하겠느냐고 비웃는다. 그래서 지도자의 자리는 힘들고 어려운 자리다. 따라서 지도자는 비난 받고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지도자는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어떤 인간관계나 혹은 학연, 지연, 혈연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우유부단(優柔不斷)하지 않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마음이 바로 공정함이다. 치우치지 않으려면 사욕이 없어야 한다.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거나 혹은 더 나은 자리를 내다보고 자신이 할 일을 하지 않거나, 자기를 편드는 쪽으로 결정한다면 그 사람은 공정한 지도자라고 할 수 없다. 

특별히 자신을 지지하고 호위하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면 균형 잡힌 인격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비뚤어진 인격에서는 공정한 마음이나 정의감이 발휘 되어질 수 없다.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그런 지도자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피곤하고 힘들 수 밖에 없다. 

지도자는 다른 이들을 감싸주고 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지도자의 권위는 섬김에서 나온다. 참된 영향력은 군림 함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감싸주고 배려하고 섬길 때에 비로소 생긴다. 

지도자는 인정이 있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인정이 메마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지도자는 결국은 자기 자신과 구성원들을 망가뜨리는 사람이 된다. 지도자에게는 지력(IQ) 보다는 EQ, 즉 감성지수가 더 중요하다.

진정 미움을 받아도 실수를 인정할수 있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곳은 애틀랜타 한인사회 이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한국 대기업들의 진출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애틀랜타 한인 사회, 이를 대표하는 애틀랜타 한인회 이홍기 회장은 지난 정기총회에서 의혹과 헛점 투성이의 불투명한 재정보고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사회에 어떤 해명도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이곳저곳 한인사회 행사에 참석하며 공공연하게 한인회장을 연임 하겠다고 입소문을 내고 다닌다. 애틀랜타 한인들의 수준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 것은 아닌지.

반면 1.5세대로 세대 교체를 표방한 동남부한인회연합회 홍승원 회장은 재정과 관련 투명하고 정확한 관리를 위해 분기별 재정보고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동남부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두 단체의 달라도 너무 다른 재정에 대한 리더의 인식이다. 1.5세대로 구성된 홍승원호가 기득권의 기성세대와 젊은 1.5세대로 구성된 임원진들 사이에서 불협화음 없이 어떤 리더쉽으로 항해해 나갈지 동남부 한인사회도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도자의 다양한 자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질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 대한 사랑이다. 지도자의 자리! 무엇을 해도 욕먹는 그 자리에서 지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은 그래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조금만 불리하고 불이익이 돌아오면 돌변해서 거품을 물고 자신이 몸담은 공동체를 공격하고 임원들을 위태롭게 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그럴지라도 “끝까지 사랑하는” 그런 지도자들이 그립고 보고 싶다.

지도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다. 천태만상의 구성원들을 조화시켜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 일색으로서 하나가 아니라 다양성의 조화를 이룬 하나여야 한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남녀노소,빈부귀천,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지도자다.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는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국의 처칠 총리가 국민들로 부터 존경 받는 이유는 그의 정직성에 있다. 그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후 국민들에게 패배를 솔직하게 시인했다. 처칠의 용기 있는 패배 시인에 비난을 퍼붓는 국민은 한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존경의 뜻을 보냈다. 처칠은 국민들로 부터 힘을 얻어 다음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국민들은 “예” 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밝힐수 있는 미움을 받는 용기있는 지도자를 신뢰한다.

 

Share.

Comments are closed.